기록 하나
성공스토리 — 마흔셋에 밀려난 사람이
다시 서기까지 7년
이건 흔히 보는 성공스토리가 아닙니다. 울산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본인이 말한 순서와 말투 그대로 옮겼습니다. 짧게 줄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너져 있는 사람에게는 요약본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두 끝에서 보낸 세 시간
2016년 12월 9일 오후 네 시였습니다. 저는 방어진 부두 끝 계선주에 앉아 있었습니다. 작업복 주머니에 든 건 20년 넘게 목에 걸고 다닌 출입증이 아니라, 그 출입증을 반납했다는 확인증 한 장이었습니다. 마흔셋이었고, 통장에는 118만 원이 있었고, 다음 달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같은 날 마흔일곱 명이 같이 나왔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는 데 걸린 시간은 오전 회의 20분이었습니다. 20년이 20분에 정리되더군요. 억울하다는 감정보다 먼저 온 건, 이상하게도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나는 왜 대비를 못 했나. 그 생각 하나가 세 시간 동안 머리에서 안 나갔습니다.
바닷바람이 차서 손이 곱았는데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 일어나면 집으로 가야 하고, 집에 가면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야 하니까요. 저는 그날,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게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이력서 서른두 장이 알려준 것
다음 두 달 동안 이력서를 서른두 곳에 넣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곳은 두 곳, 붙은 곳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면접에서 저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사람이 서류를 넘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력은 좋은데요, 저희가 마지막으로 뽑은 분이 서른아홉이라서요."
그때 알았습니다. 세상은 제 20년을 '경력'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이'라고 부른다는 걸요. 성공스토리 속 주인공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넘겼는지 저는 그때 정말 궁금했습니다. 아무튼 그 사실이 억울해서 한 달을 더 흘려보냈습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 있었습니다. 하루에 라면 하나로 버틴 날이 있었는데, 배가 고픈 것보다 아무도 나를 안 찾는다는 게 더 아팠습니다.
바닥은 신분이 아니라 위치입니다. 위치는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을 뿐입니다.
모든 성공스토리는 초라한 새벽에서 시작합니다
흔히 보는 성공스토리는 늘 빛나는 장면부터 나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조명이 켜지는 장면이요. 그런데 제가 겪어보니 실제 순서는 정반대였습니다. 시작은 전부 아무도 안 보는 초라한 새벽이었습니다.
2017년 3월 어느 날, 저는 이유 없이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냥 운동화를 신고 나갔습니다. 목적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45분 걷고 돌아왔는데, 그날 처음으로 낮에 졸지 않았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은 드라마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규칙을 딱 하나만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만 한다. 열 가지 계획은 사흘이면 무너진다는 걸 이미 여러 번 확인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침에 걷고, 걷고 와서 어제 알게 된 것 한 줄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딱 두 가지였고, 둘 다 돈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3년, 그리고 노트 열한 권
적을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20년 현장에 있던 사람은 적을 게 많았습니다. 도면에서 실수가 자주 나는 자리, 신입이 꼭 한 번은 다치는 공정, 검사에서 반려되는 용접 비드의 모양, 원청이 싫어하는 서류 양식. 머릿속에만 있던 걸 종이에 옮기니 저도 놀랐습니다. 저는 실직자였지만, 동시에 기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스토리라고 부를 만한 구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년째 되던 해에 후배들이 하나둘 물어보러 왔습니다. 처음엔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알려줬고, 나중엔 토요일 오전에 네다섯 명 모아놓고 두 시간씩 설명했습니다. 돈은 한 푼도 안 받았습니다. 받을 명분이 없었으니까요. 대신 그 두 시간을 준비하느라 제 노트는 계속 두꺼워졌습니다.
3년 동안 통장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건 노트 열한 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마흔여섯에 노트나 쓰고 앉아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이는 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두면 하루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니까, 그게 더 무서워서 계속했습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온 날
2020년 여름이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일하다 다른 데로 옮긴 후배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저희 회사에 안전이랑 품질 서류 봐줄 사람이 급한데요. 형님 토요일에 가르치시던 거, 그거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 자리는 제가 잘나서 온 게 아닙니다. 3년 동안 노트 열한 권을 채운 사람이 그 동네에 저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운이라고 하면 운입니다. 다만 그 운이 왔을 때 내밀 게 있었느냐는 운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3년 치 새벽이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성공스토리에 나오는 극적인 스카우트 같은 건 없었습니다. 첫 월급은 전에 받던 것의 70%였습니다. 그래도 그날 저는 오랜만에 잠을 푹 잤습니다. 액수 때문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세상에 다시 하나 생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7년 뒤, 저는 부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작은 협력업체에서 관리 일을 하고, 주말에는 현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서류와 절차를 가르칩니다. 수강생은 많을 때 열두 명, 적을 때 세 명입니다. 차는 아직 12년 된 걸 탑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부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쓸 만한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 성공스토리는 이겁니다. 아침에 눈을 뜰 이유가 생겼다는 것. 2016년 겨울의 저는 그게 없어서 부두 끝에 세 시간을 앉아 있었습니다.
성공은 역전이 아니라 축적입니다. 역전은 하루에 일어나지만, 축적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축적이 더 셉니다.
성공스토리를 만든 다섯 가지 원칙
지금 무너져 있는 분이라면 이 다섯 개만 가져가셔도 충분합니다. 제가 7년 동안 실제로 지킨 것만 적었습니다.
- 오늘 하루에 딱 하나만 정하세요열 개를 정하면 사흘 안에 전부 무너집니다. 하나는 1년을 갑니다. 저는 그 하나가 새벽에 걷기였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고, 지키기 우스울 만큼 작아야 합니다.
- 머릿속에 있는 걸 종이로 꺼내세요실력은 잊히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남이 나를 부를 때 필요한 건 내 머릿속이 아니라,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는 형태입니다.
- 공짜로 알려주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세요제게 전화를 준 사람은 제가 커피값도 안 받고 가르친 후배였습니다. 도와줄 사람은 하늘에서 안 옵니다. 과거의 내가 대했던 사람 중에서 옵니다.
- 결과가 안 보이는 구간을 미리 계산하세요저는 3년이었습니다. 이 구간을 '실패'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사람은 그만둡니다. 미리 각오해 두면 같은 시간이 '통과 중'이 됩니다.
- 부끄러움에 지지 마세요제일 무서운 건 실패가 아니라 그걸 남에게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하고 나면 별일이 아니었습니다. 숨기느라 쓴 힘이 다시 일어서는 데 쓸 힘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분일 겁니다. 잘 풀리는 사람은 이런 글을 끝까지 안 읽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버텨낸 것, 그리고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낸 것. 대단해 보이지 않겠지만 저는 그게 뭔지 압니다. 그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부두 끝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은 7년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인생이 바뀐 날은 대단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운동화 신고 나간 새벽이었어요."
당신의 성공스토리도 아마, 오늘 같은 평범한 날에서 시작될 겁니다.